할머니한테 몇 번을 설명해도 안 통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

손주 문제를 인정하는 순간 자기 자식의 잘못이 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. 진단명을 이해시키려 하기보다 눈앞에 보이는 것 한 가지와 해주실 일 한 가지만 부탁하는 편이 낫습니다. 추상적인 설명은 반박을 부르고 구체적인 부탁은 반박할 게 없습니다.

할머니한테 몇 번을 설명해도 안 통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

할머니한테 몇 번을 설명했는데 또 같은 말이 돌아옵니다. 크면 다 해, 남자애들은 원래 늦어,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.

명절이나 생신 때만이 아니라 전화할 때마다 나오니까 나중에는 전화 자체를 피하게 됩니다.

안 믿는 게 아니라 다른 걸 지키고 있는 겁니다

같은 말이 반복되는 이유가 정보 부족만은 아닙니다. 조부모 세대가 자란 시기에는 발달지연이라는 말 자체가 흔하지 않았습니다. 늦되다가 트인 아이를 실제로 여럿 보셨을 수도 있습니다.

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. 손주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자기 자식(부모님 입장에서는 우리)의 잘못이 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. 그래서 아니라고 하는 게 손주를 지키는 말이 아니라 자식을 지키는 말일 때가 있습니다.

이걸 알고 나면 대화의 목표가 달라집니다. 설득해서 인정을 받아내는 게 아니라, 행동 몇 가지만 바뀌게 하는 것으로요.

진단명을 이해시키려 하지 않습니다

경험상 잘 안 되는 순서가 있습니다. 진단명을 말하고, 자료를 보여주고, 검사지를 보여주는 것. 대개 반박이 돌아옵니다.

바꿔서, 눈앞에서 보이는 것 한 가지와 그때 해주실 일 한 가지만 말하는 편이 낫습니다.

안 통하는 말 그나마 통하는 말
자폐 스펙트럼이라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려워요 얘는 인사를 시키면 더 굳어요. 그냥 옆에 앉혀만 주세요
감각 예민이 있어서 소리에 반응해요 TV 소리만 조금 줄여주시면 밥을 먹어요
조기 개입이 중요한 시기예요 지금 병원 다니는 중이에요. 다녀와서 말씀드릴게요

추상적인 설명은 반박을 부르고, 구체적인 부탁은 반박할 게 없습니다.

한 사람만 확보하면 됩니다

친척 전체를 설득할 필요는 없습니다. 그쪽 가족 중에 한 명, 우리 편이 되어줄 사람 한 명만 있으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. 대개는 같은 세대 중 아이를 키워본 사람입니다.

그 한 사람에게만 자세히 말하고, 나머지에게는 위 표처럼 짧게 말하는 방식이 덜 지칩니다.

그래도 안 되면 거리를 둡니다

몇 년을 노력해도 안 바뀌는 관계가 있습니다. 그때 부모가 자책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. 내가 설명을 못 해서.

설명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. 그리고 아이 앞에서 아이 흉이 반복되는 자리라면 그 자리에 덜 가는 것도 방법입니다. 아이는 어른들 말투에서 자기 얘기라는 걸 압니다. 내용을 몰라도 압니다.

명절에 미리 정해두면 그날이 덜 힘들다는 이야기를 앞서 적은 적이 있는데, 명절이 아니어도 같습니다. 몇 시간 있을지, 무슨 말이 나오면 언제 일어설지 배우자와 미리 정해두면 그날 싸울 일이 줄어듭니다.

아이에게 해줄 말도 하나 준비해 둡니다

할머니가 뭐라고 했을 때 아이가 들었을 수 있습니다. 그때 아무 말도 안 하면 아이는 그 말이 맞다고 받아들이기 쉽습니다.

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 줄이면 됩니다. 아까 할머니 말은 할머니가 잘 몰라서 그런 거야. 너는 지금 잘 하고 있어.

이 문장 하나가 그날을 정리해 줍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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